2024.02.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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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맥아더....한국전 영웅 10명 "영원히 기린다"

삼성·LG,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한미동맹 70년 영상
한국 보훈처 "한국전 당신들 희생이 한국번영 기초닦아"

 

삼성전자는 4월 2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에게 대한 존경과 감사의 뜻을 담은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헌정 영상을 공개했다./삼성전자 제공

 

KoreaTV.Radio 김재권 기자 |  “한국이 오늘날 누리는 자유, 번영, 평화는 멀리서 온 미국 참전 영웅들의 희생으로 이뤄낸 것입니다. 한국전쟁 영웅들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20일 새벽 5시, 미국 뉴욕의 최대 번화가인 타임스스퀘어 광장의 한 대형 전광판에 ‘한국전쟁 10대 영웅들’이란 제목의 30초 분량 영상이 등장했다. 삼성전자가 1992년부터 31년간 독점 사용하고 있는 ‘원타임스퀘어’ 빌딩 전광판에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만든 헌정 영상을 튼 것이다. 우리나라 보훈처가 제작한 이 영상은 70년 전 한국전쟁 당시 큰 공을 세웠던 미국과 한국의 10대 전쟁 영웅의 빛 바랜 사진 등을 보여주며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 영상을 본 한 교민은 “매일 출근길에 보던 삼성 로고 대신 전쟁 영웅들이 등장하니 뭉클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역사적인 동맹 70년의 고마움과 의미를 담은 동영상을 제작, 전후 폐허 속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과 LG의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을 통해 앞으로 2주간 쉼 없이 틀기로 했다. 삼성전자가 새벽 5시부터 오후 4시 59분까지 틀면, LG는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 59분까지 이어가는 릴레이 방식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미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글로벌 인지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7명의 영웅들

보훈처는 20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70년을 이어온 한미 동맹의 역사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을 10대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한미연합사와 함께 두달 동안 선정 작업을 거쳤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이 낙동강 방어선까지 쳐들어와 패전의 위기에 처했을 때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 대한민국을 구했다. 그는 당시 성공률이 “500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 합참·해군이 모두 반대했던 작전을 성공시켰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참전한 ‘부자(父子) 영웅’도 있다. 밴 플리트 장군은 1951년 4월 미 8군 사령관으로 한국에 파견됐다. 참모들이 “승산이 없는 전쟁이니 도쿄로 철수하자”고 했지만, “나는 승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전선을 지켰다. 아들 제임스 밴 플리트 2세는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1952년 4월 임무 수행 중 대공포 공격을 받고 실종됐다. 플리트 장군은 “추가 인명 손실이 우려된다”며 아들 수색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또 다른 부자(父子) 영웅인 윌리엄 쇼도 아들을 전장에서 잃었다. 그는 1920년 한국에 온 선교사로, 전쟁이 터지자 60세의 고령에 자원 입대해 미 군목이 됐다. 아들 윌리엄 해밀턴 쇼는 미 해군 정보 장교로 맥아더 장군의 서울수복작전을 돕다 총탄을 맞고 28세에 전사했다.

딘 헤스 공군 대령은 1950년 7월 대구로 파병돼 1년여 동안 250회의 전투 출격으로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고 임무를 수행했다. 중공군의 진격으로 서울이 위험에 처했던 1·4 후퇴 때 전쟁 고아 950명을 구출해 제주도로 피난시키기도 했다.

 

랠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은 1950년 11월, 청천강 북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205고지 점령 당시 중공군의 수류탄에 맞고도 작전을 지휘했다. 심각한 부상으로 움직일 수 없자, 대원들에게 자신을 남겨두고 떠날 것을 명령한 ‘참군인’이었다.

 

삼성전자는 4월 2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에게 대한 존경과 감사의 뜻을 담은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헌정 영상을 공개했다.

 

◇나라를 지킨 한국의 영웅들

김영옥 미 육군 대령은 재미교포로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 전역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구하겠다”며 미군 예비역 대위로 자원 입대했다. 1951년 5월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 참전해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다.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에서 국군 제1사단을 지휘, 다부동 전투에서 미군과 함께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했다.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고 가라”는 말로 임전무퇴의 정신을 실천했다.

 

김두만 공군 대장은 6·25전쟁 중 대한민국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을 달성했다. 미 공군이 500회 출격으로도 폭파하지 못한 승호리 철교를 저고도 폭격 14회 만에 폭파, 적 후방 보급의 요충지를 차단했다.

 

김동석 육군 대령은 1950년 9월, 미 8군 정보 연락장교로 서울 탈환 작전을 위한 결정적인 적군 정보를 수집해 UN군사령부에 제공했다.

박정모 해병대 대령은 서울 탈환 작전 시 소대원을 인솔해 시가전을 전개하고 중앙청(당시 정부청사)에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우리는 70여 년 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 용사들의 위대한 희생과 헌신이 굳건한 한미 동맹의 토대가 되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